[기자의눈] 시장경제의 원리, ‘통제’가 아닌 ‘합의’로

송현섭 / 2023-01-17 18:01:11

[하비엔=송현섭 기자] 정부의 시장 개입과 규제가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해치는 경우, 이를 흔히 ‘정부의 실패’라는 말을 사용한다. 규제를 가하는 당국자들의 불완전한 지식과 정보, 미흡한 규제수단이 결국 정책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비효율성만 초래한다는 의미다.


최근 부동산시장에 큰 혼란을 일으킨 ‘빌라왕’ 사건을 지켜보며 시장 매커니즘을 위배한 무리한 정책의 어두운 그늘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정부에서 주택가격의 급격한 상승을 막기 위해 신규 담보대출을 규제하고 대신 전세대출을 권장했던 시기가 있었다.

 

▲ 송현섭 기자.

당시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금융권에서 취급했던 전세대출이 사기 범행에 이용될 줄은 당국자도 국민도 몰랐다. 일련의 사건들은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한 갭투자 사기 사건을 연상시킬 정도로 닮아있다.

집주인은 전세대출을 받은 세입자의 돈으로 또 다른 주택을 연쇄 구매하며 사기 범죄를 이어갔다. 심지어 해당 지역 일대 부동산시장에서 매매가보다 전세가가 훨씬 높은 데도 불구하고 이상징후를 포착해 조사하거나 수사에 들어간 정부기관은 없었다.

이로 인해 세입자들이 심각한 피해에 노출되자 정부도 부랴부랴 대응에 나선 모양새다. 어쨌든 세입자 피해보상을 위해 국민 세금이 들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시장에 개입하고 규제하려던 정부 정책실패가 몰고 온 당연한 귀결처럼 생각된다.

입법목표에 맞춰 시행된 규제가 항상 선의의 결과를 낳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오래 전에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화를 내세운 정부에서 법을 개정하자 발생했었다. 

 

2년 이상 근무한 파견 근로자를 비롯한 비정규직을 반드시 직고용해야 한다는 규정은 인건비와 퇴직금을 줄여야 하는 회사 인사 담당자들에게는 2년 내 해고해야 한다는 시그널로 해석됐다.

정규직 고용을 늘리자는 의도로 시작된 정부와 정치권의 취지와 달리, 당시 비정규직 근로자 대부분이 근속 2년 안에 해고되거나 대량 해고될 위기에 처했다. 이는 법만 제대로 만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리걸 마인드(법률적 사고력)’를 경계하는 만드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시장경제질서라는 매커니즘은 때로는 약자를 보호하려는 이들을 좌절시키고 소수 특권층의 이권만 챙겨주며 이치를 거스르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 당장 개입하지 않으면 강자에 의한 약자 수탈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될 것이다.

하지만 정부에서 시장을 고의로 왜곡시킬 때 발생하는 위험성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경제학 기본을 배운 사람들의 공통 견해다. 시장 매커니즘은 불안정한 상황을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균형으로 이행시키는 물리학적 모델을 원용해 이치를 설명한다.

화폐시장을 예측해 이자율과 통화량을 양 축으로 자금의 수요·공급곡선에서 균형을 찾는 모델도 기본은 마찬가지다.

균형이자율보다 높은 하한선을 정하면 공급되는 자금은 남아돌고, 균형에 비해 낮게 상한선을 정하면 수요에 못 미치게 자금이 부족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 규제에 따른 효과를 벗어나 균형을 찾으면 균형이자율과 균형통화량이 정해지는 것이다.

최근 금융당국에서 ‘대출이자율을 내려라’ ‘대출규모를 더 늘려라’ 등 시중은행의 예대마진 관리와 가계대출 등을 조절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금융당국도 나름대로 이유는 있겠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어느 정권에서나 시장원리의 작동을 거스르면 부작용이 생기게 마련이다.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를 잘 알고 있는 당국자들은 당장 눈앞의 성과에만 급급해서는 안 된다. 

 

정작 국민을 위한 정책이 무엇인지, 역대 정부의 정책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서로 다른 이해 관계의 상생을 위해서는 ‘통제’가 아닌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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