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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취미생활] 황학상 한국시세이도 대표

윤대헌 기자 / 2022-04-18 16:51:31
‘중년의 로망’ 색소폰, 밴드 결성으로 직원소통에도 한 몫
죽을 때까지 함께하는 ‘동반자’…은퇴 후 버스킹공연 이 꿈

[하비엔=윤대헌 기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신’을 중시하는 생활방식이 트렌드가 된 지 오래다. 특히 유연근무가 뉴 노멀(New Normal)이 되면서 일과 취미생활을 함께 즐기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빌 게이츠, 워렌버핏, 마크 저커버그 등 글로벌기업을 이끌고 있는 총수들 역시 자신만의 취미생활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기업을 이끌고 있는 CEO(최고경영자)들은 과연 어떤 취미를 갖고 있을까. 하비엔은 바쁜 일상에도 시간을 쪼개 ‘나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 국내 기업 총수들의 취미생활을 연재한다.

 

한국인은 입맛과 더불어 제품 선택에 있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유수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시장을 ‘테스트 마케팅’으로 활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유행에 민감하고 ‘호불호’가 뚜렷한 화장품은 더욱 그렇다.

 

1997년 한국에 진출한 시세이도는 150년 역사의 일본 화장품 브랜드다. 유독 텃세가 심한 한국에서 지금껏 글로벌 톱5의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몇 안 되는 외국계 기업이다. 그 중심에 황학상 대표(62)가 있다.

 

황 대표는 국내 화장품 발전사에 있어 산증인으로 꼽힌다. 1984년 한국화장품 입사를 통해 화장품 업계에 첫 발을 내딛은 그는 로레알코리아를 거쳐 2011년 11월 시세이도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2015년 대표이사에 선임돼 올해로 7년째 한국시세이도를 이끌고 있다.

 

▲ 황학상 한국시세이도 대표.

 

영업과 기획, 홍보 등을 두루 거친 황 대표가 CEO를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의욕이 넘치는 만큼 처리해야 할 업무도 적지 않다. 황 대표는 그 중에서도 직원들과의 소통을 중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틈틈이 본사와 현장을 오가고 있다.

 

시간을 쪼개야만 할 만큼 바쁜 일상에도 황 대표는 ‘나홀로’ 즐기는 취미가 있다. 바로 색소폰 연주다.

 

색소폰은 ‘중년의 로망’ 중 하나로 꼽힌다. 황 대표의 나이와도 딱 어울린다. 하지만 그가 색소폰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여년 전이다. 어떤 연유 때문일까.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밴드활동을 통해 트롬본을 연주했다. 대학 졸업 후 로레알에 입사했는데, 당시 회사 업무와 관련해 열린 파티에서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색소폰을 연주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평소 악기에 소질이 있어 아예 본격적인 연주를 위해 교습을 받기도 했다. 평소에는 혼자 연주를 즐기지만, 연말이면 파티에 ‘초청’돼 실력을 뽐내기도 한다.”

 

한국시세이도 입사 후에도 황 대표의 ‘색소폰 사랑’은 이어졌다. 2017년 한국 론칭 20주년 기념행사 당시, 황 대표는 직원들과 밴드를 구성해 연주를 선보였다. 회사 내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후 회사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행사 때마다 초청을 받았고,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했다.

 

“20주년 기념행사를 계기로, 한 직원은 밴드활동을 위해 자비로 드럼을 구입할 만큼 열정적이었다. 직원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어 행사가 열릴 때마다 외부 초청 대신 재능기부로 행사를 치렀다. 무엇보다 직원들 사이에서 애사심과 동료애가 더욱 끈끈해졌다.”

 

색소폰은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비슷한 소리를 내는 악기로 알려졌다. 연주하는 사람의 호흡이 상대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그래서 감정 표현을 하는 데 제격이다. 직원들과 소통하는 데 이만한 악기가 없다는 것이 황 대표 지론이다. 

 

글로벌 기업을 이끄는 CEO는 늘 시간에 쫓기게 마련이다. 저녁이나 술자리는 기본. 업무상 골프도 어울려야 한다. 황 대표는 자신의 ‘최애’ 취미인 색소폰을 즐기기 위해 어떻게 시간을 마련하는 것일까.

 

▲ 황학상 한국시세이도 대표의 색소폰 연주 모습.

 

“사실 평일에 색소폰을 연주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주말에 골프 약속이 없는 날이면 색소폰 연습을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파트에 방음시설이 없어 맘 놓고 연주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사운드 크기를 조절하는 기구를 이용해 연주하고 있다. 가끔은 공원에 나가 ‘나홀로 연주’에 빠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회사 일을 모두 잊어버리고 리프레시가 되는 느낌이다.”

 

색소폰 연주는 듣는 것만으로도 힐링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만족이 더 강하다. 가족과 함께 어울려 할 수 있는 악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20년 넘게 가족의 눈치를 보지 않고 색소폰 연주를 즐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사실 색소폰을 연주하는 사람은 타인보다는 자기만족을 위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끔 몰래 연습한 곡을 아내에게 선사하기도 한다. 연습곡도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모두 일상에 쫓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취미생활을 온전히 즐기기가 쉽지 않지만,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최근 설문조사에서 죽기 전 꼭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 가운데 ‘악기를 배우고 싶다’는 응답이 3분의 1을 차지했다. 그 중에서도 색소폰은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낙원동 악기상가에서 기타 다음으로 많이 팔리는 악기가 바로 색소폰이다.

 

반려동물 대신 반려악기를 택해 ‘중년의 로망’을 한껏 누리고 있는 황 대표는 색소폰 연주를 통해 얻는 것이 무엇일까.

 

“색소폰을 좀더 일찍 시작하지 않은 것이 후회될 정도다. 그래서 지금은 직원들에게도 권유하고 있다. 색소폰은 복식호흡을 해야 하기 때문에 폐활량이 늘고, 손가락과 두뇌를 사용해 치매도 예방된다. 연주에 몰입하면 그간 쌓인 스트레스도 눈 녹듯 사라진다. 여러 가지 면에서 삶이 풍요로워졌다.”

 

황 대표는 무엇보다 색소폰을 통해 직원들과 더 가까워진 점에 대해 만족스러워하고 있다. 취미생활을 서로 공유하다 보니 대화의 폭이 넓어진 까닭이다. 백화점 현장 직원들도 회사 대표를 어려워하지 않고 먼저 다가올 정도란다.

 

외국계 기업이 국내에서 생존하기란 쉽지 않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탓이다. 화장품 업계 역시 포화상태다. 지난 2015년 취임 후 이듬해 흑자전환을 이뤄낸 황 대표는 그러나 2019년 일본 불매운동에 이어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시세이도 최장수 CEO로서 어깨가 더욱 무겁지만, 황 대표의 표정은 밝기만하다.

 

“지금의 국내외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화장품 업계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나를 믿고 언제나 소통할 수 있는 직원들이 있어 든든하다. 그런 직원들을 위해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노력할 것이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을 통해 결국 소비자들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어려운 시절을 보냈지만, 올해 또 다시 흑자전환이 기대된다.”

 

색소폰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듣는 이의 가슴을 파고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환갑의 나이를 훌쩍 넘어선 황 대표는 언제까지 심금을 울리는 색소폰 연주를 즐길 수 있을까.

 

“코로나 상황 때문에 지난 2년간 회사에서 밴드활동을 못했다. 올해부터는 상황에 맞춰 밴드활동을 부활시킬 예정이다. 또 지인들과 함께 재능기부를 통해 음악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고, 은퇴 후에는 버스킹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죽을 때까지 색소폰을 동반자처럼 여길 수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대단한 황 대표의 최애 연주곡은 가수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다. 황 대표에게 색소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애인’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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