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석2구역, 주민 배제 ‘밀실 협의’ 논란…SH 주도 ‘막장’ 비난

윤대헌 기자 / 2022-05-15 15:50:16
SH, 시공사 선정 관련 주민 참관 거부 후 밀실 논의
주민대표위원장, 의결 절차 누락 후 확정 고지 ‘논란’
일부 주민, “특정 시공사 밀어주기식, 받아들 수 없어”
SH, “16일부터 5일간 주민 대상 간담회 진행” 해명

[하비엔=윤대헌 기자] ‘공공재개발 1호’라는 관심 및 기대와 달리 그동안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흑석2구역에서 공동 시행자인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독단적 행보’로 또 다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SH가 시공사 선정과 관련해 주민 참관 없이 간담회를 가진 것이 구설에 오른 것이다. 게다가 주민대표회의 이모 위원장은 이번 간담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주민대표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확정 고지해 논란을 더욱 키우고 있다.

 

1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SH는 지난 11일 서울 동작구 흑석2구역 주민대표회의 사무실에서 간담회를 열고 시공사 입찰 재공고를 논의했다.

 

SH 주재로 열린 이날 간담회는 그러나 입찰 참여 당사자인 각 시공사와 주민의 참관 없이 주민대표회의 집행부 일부와 SH 관계자, 서울시 직원 일부만 참석했다.

 

▲  지난 11일 열린 간담회 현장에서 주민대표회의 집행부와 일부 주민들간 마찰을 빚고 있는 다. [동영상=유튜브]

 

이에 일부 주민들이 현장을 찾아 간담회 공청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를 항의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출동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이후 이튿날인 12일 이모 주민대표회의 위원장은 재입찰 공고를 고지하면서 주민들과의 마찰이 극에 달하고 있다.

 

▲ 지난 11일 SH 주재로 열린 간담회에서 주민대표회의 측과 주민들간 마찰이 빚어져 경찰이 출동해 사태를 마무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사진=주민]

 

일부 주민들은 “이번 ‘밀실 간담회’를 통해 결정된 입찰 재공고는 김헌동 SH 사장의 ‘삼성물산 밀어주기’ 의혹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라며 “주민들에게 유리한 방식은 신규 입찰이지만, SH가 결국 삼성물산의 재입찰 요구를 들어준 셈이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동안 일부 주민들은 기존 입찰참여견적서가 불리하게 작성된 만큼 새로운 견적서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재입찰이 아닌 신규입찰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한 조합원은 “통상적인 입찰참여견적서는 공사비와 이주비, 특화 내용, 분담금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돼 있지만, 우리 구역의 견적서는 평당 공사비와 이주비 조달 내용만 달랑 담겨 있다”며 “주민들이 각 시공사별 제안 조건을 비교해 더 좋은 조건의 업체를 선정해야 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주민들에게 딱히 이득이 없는 입찰참여자격서를 채택하려는 SH의 의도는 삼성물산에 유리한 구도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냐”며 “삼성물산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업체가 많지만, 주민과 업체는 모두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SH 측 관계자는 “지난 간담회는 우선적으로 주민대표회의 집행부와 함께 진행한 자리다”라며 “16일부터 5일 동안 주민을 대상으로 한 간담회를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SH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은 또 있다. 주민들은 ‘부당한 경고’를 받은 업체의 입찰을 SH 측에서 사전 차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누적 경고 4회를 받은 대우건설이 그 예다.

 

재입찰은 신규입찰과 달리 시공사들이 기존에 받은 경고가 모두 유지된다. 따라서 3회 이상 경고가 누적되면 입찰 참여 자격이 박탈되는 만큼 경고를 많이 받은 시공사는 신규입찰이 유리하다.

 

앞서 SH는 ‘편파적 경고’ 부여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우선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한 홍보채널 운영을 두고 대우건설에는 경고를 준 반면 삼성물산에 대해서는 ‘일반인 전체에 공개된 채널’이라는 이유로 경고를 주지 않았다.

 

또 삼성물산이 규칙을 어기고 사업지 내에 홍보현수막을 설치했지만, ‘현장설명회 이전 설치’라는 이유로 경고를 부여하지 않았고, 홍보직원이 토지 등 소유자의 영업장을 찾아간 건에 대해서도 ‘법률 검토 중이다’라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SH 측 관계자는 “대우건설의 경우 총 11건의 불법 행위 신고가 접수돼 이 가운데 4건은 내부적으로 검토한 결과 명백한 불법 행위로 판단했다”며 “삼성물산은 총 4건의 신고 가운데 1건은 불법, 1건은 적법, 나머지 2건에 대해서는 현재 외부 법률팀에 의해 검토를 진행 중이다”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번 입찰과 관련해 불법 행위를 저질렀을 경우 재입찰이나 신규입찰 모두 응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공공기관으로서 공정한 업무처리를 원칙으로 삼아야 하는 김헌동 SH 사장은 한 술 더 뜨고 있다. 삼성물산의 수의계약을 이끌어내기 위해 김 사장이 주민대표회의를 압박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SH에서 김 사장 명의로 주민대표회의에 발송한 공문을 보면 ‘대우건설의 입찰 참가 자격을 박탈하지 않을 경우 주민대표회의와 맺은 협약을 해지, 공공재개발 사업지에서 제외시키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 SH가 김헌동 사장 명의로 주민대표회의에 발송한 공문의 일부 내용. 

 

본지가 입수한 2건의 공문에 따르면 SH는 “(대우건설에 대한) 입찰 참가 자격 박탈이 이뤄지지 않고 사업이 진행된다면 주민대표회의와 SH가 맺은 협약의 해지사유가 될 수 있다”며 “흑석2구역은 신규입찰이 아닌 재공고가 타당하다”고 명시돼 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SH는 그동안 시공사 선정 권한이 주민대표회의에 있다고 누누이 밝혔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3차례 이상 개별홍보 신고를 통해 입찰 자격이 박탈될 수 있는 삼성물산에 경고 부여를 미루고, 법 조항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등 삼성물산과의 수의계약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SH 측 관계자는 “SH에서 발행하는 모든 공문은 김헌동 사장 명의로 발송된다”며 “이번 건 역시 대우건설에 대한 SH의 입장을 사장 명의로 전달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주민대표회의의 재입찰 공고로 인해 해당 집행부가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만약 주민대표회의 위원장이 주민대표회의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처리한다면 직무상 배임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소재 한 로펌 관계자는 “위원장의 독단적 결정은 주민들이 고발 등으로 문제를 삼을 경우 법정다툼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다”라며 “만약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게 되면 위원장직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 동작구 흑석동 99의 3번지 일대 4만5229㎡ 규모의 흑석2구역은 지난해 초 국토교통부가 공공재개발 첫 후보지로 지정해 SH가 시행을 맡은 지역이다.

 

이 구역은 공공재개발을 통해 지하 7층~지상 49층 규모의 아파트 1216가구와 부대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특히 ‘준강남’에 속해 공공재개발 최대어로 꼽혀 경쟁이 치열한 만큼 시공사 선정과 관련해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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