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영 변호사의 세상 읽기 1화] '비제도적 명예형의 득과 실'

편집국 / 2021-03-02 13:20:58
▲ 이준영 법무법인 로드맵 대표변호사
[하비엔=편집국] 2009년경부터 급속히 확산된 스마트폰과 이를 통해 널리 보급된 다양한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이제는 정보 및 콘텐츠의 생산자와 유통자 및 소비자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이 힘든 시기다. 


전통적인 언론과 미디어 매체보다 스마트폰 및 이와 유사한 다양한 디바이스에서 제공되는 멀티채널 서비스가 우리 생활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더 나아가 공동체의 작동 원리를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시작된 미투 운동과 빚투 운동이 과거부터 전통적으로 운용되어온 행정시스템 및 사법제도 등으로부터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고 고통에 신음하던 성폭력 피해자, 경제사범 피해자 등에게 빠른 시간 안에 신속하게 피해를 회복 받고 용서를 얻을 긍정적 작용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사회 움직임의 연장선상에서 최근 유명 배구선수들 사이의 팀 내 갈등 및 이를 시사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 글들이 시발점이 되어 학내폭력, 괴롭힘 등 과거의 잘못된 행적에 대한 폭로와 사과 및 이에 대한 유관 단체 등의 자체적인 처분이 우리 사회에 깊숙이 회자되고 있다.

배구 분야에 이어 야구 선수들 사이의 과거 학창 시절 학교폭력 행위는 물론 유명 축구 선수의 성폭력 피해 폭로까지 이어져 다시 한번 우리 사회는 과거의 잘못된 행적에 대한 사회적 처벌이 화두가 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 현상의 기저를 관찰해보면, 짧게는 수년 전 길게는 1~20년 전 벌어진 과거 행적에 대해 피해자들이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한 폭로를 행하고 해당 글에 대한 당사자의 입장 표명이 있은 후 언론은 사법 질서에 관한 판단이 시작조차 되기 전에 수많은 추측성 기사와 감정적 글들을 실어나르기에 집중한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는 물론 당사자의 부모 형제 등 가까운 지인들까지 도마 위에 올라 소위 우리 헌법과 형사법 체계가 담고 있지 아니한 명예형을 선고한다.

사실상 자력구제 또는 사적 폭로에 의해 명예와 이미지가 크게 실추된 당사자들은 자신의 모든 지위와 명예를 한순간에 모두 내려놓게 된다.

한 가수의 부모가 빚투 관련해 고발당했을 때 심지어 해당 가수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연좌제에 가까운 명예형을 선고받기도 하였다. 모든 활동을 멈추고 긴 시간을 자숙하며 세상과 단절된 채 형벌 아닌 형벌을 받은 셈이다.

물론 학교폭력과 사기 범행, 성폭력 행위 등은 명백히 처벌받아야 할 범죄이고 이러한 잘못을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로 정당화해줄 순 없다. 최초 폭로자의 글을 접했을 때 이들이 명확한 사실확인 없이 결백을 주장한다거나 폭로자를 무작정 비판하는 태도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러나, 헌법과 법률의 기초 아래 타인의 잘못에 대해 단죄하고 처벌을 가하는 시스템은 분명히 절차와 요건이 존재한다.

어떠한 잘못이 있을 때 이에 대한 행정조사, 형사 수사가 이루어지되 당사자에게 충분한 방어권을 보장하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증거에 의해 행정처분 또는 유죄의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 무죄 추정의 원칙에 의해 함부로 누군가를 죄인이라는 낙인을 찍지 않기로 한 사회적 합의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주요 근간을 형성하고 있다.

자신이 범한 잘못에 대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으며 처벌을 받을 때도 법이 정한 형벌과 행정처분의 범위 내에서 합법적으로 법이 집행되고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

십수 년이 지나 실체진실을 발견할 객관적이고 명백한 증거가 대부분 사라진 상황에서 고도로 발달한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과거의 행적을 폭로하고 이러한 글이 순식간에 온라인상에 퍼져 가해자로 지목된 자가 제도의 틀 내에서 최소한의 적절한 방어권을 행사할 틈도 없이 그가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유명인이라는 점에 위축되어 잘못을 인정하는 걸 넘어 모든 지위와 권한, 명예를 한순간에 잃는 현대판 명예형이 과연 부작용과 남용의 우려가 없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해봐야 할 때이다.

미투 현상 , 빚투 현상, 학교폭력 폭로 현상이 가진 긍정적인 효과를 제도 내로 편입하여 최대한 살리면서 그 부작용을 제거하기 위한 제도권의 고민과 노력이 절실하다고 본다.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피해 호소의 장치로 활용한다는 건 그만큼 기존 제도권의 형사 절차 등이 피해자 보호에 미흡하고 긴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크게 신뢰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부의 편중, 권력의 세습, 기회의 공정 와해 등으로 공정과 경쟁이 더는 우리 사회를 지탱해 주지 못하기에 극도로 강화된 윤리와 도덕적 기준이 우리 사회의 유일한 화두가 된 것은 아닌지 다 같이 고민해봐야 할 때이다.

 

<본 칼럼은 외부 객원 칼럼니스트의 글로 본지의 공식입장 또는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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