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신의 철길 따라 25화] 전쟁과 호국의지 드높았던 철도원

편집국 / 2021-02-01 09:08:30

[하비엔=편집국]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알아주는 사람 없는데도 맡은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 사람이 전쟁터의 철도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1951년 1.4후퇴 시 서울역의 피난민 인파

6.25전쟁이 발발하자 너나없이 집도 버리고, 가족과 함께 피난길을 나섰을 때, 지금이야 내차가 있으니 그걸 이용하면 되겠지만, 그때는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 기차밖에 없었다. 철도원들은 이들을 위하여 계속 기차를 운행해야 했으니 나와 내가족의 피난은 생각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파괴된 선로를 복구하는 철도원

그리고 철도원들은 전쟁 중 파괴된 시설과 차량 등을 최단시간 내에 복구하여 다시 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950년 6월25일 급작스런 북한의 남침이 시작되자 긴급 국무회의에 다녀온 김석관 교통부장관은 전시비상수송체제로 전환하여 철도종사원을 비상동원토록하고, 비상수송본부를 설치하였다. 

 

7월24일에는 철도종사원에 대한 군 징용에 관한 특별조치로 입영대상자의 군 징집도 면제하고, 오직 비상근무체제에 전 철도종사원이 합류하도록 하였다.

철도원의 피해는 뜻밖에 7월11일 아직 북한군은 내려오지도 않은 전북 이리(지금의 익산)역에서 발생하였다. 

 

당시 미군은 천안을 점령하고 남진하려는 북한군에 맞서 천안부근에서 치열한 전투 중이었고, 한국군은 진천과 청주지역에서 북한군과 격렬한 전투 중이어서 이리는 전쟁 기운을 느끼지 못한 상황에서 출근하여 대기 중이던 이리기관차사무소 철도원들은 기관차를 정비하여 명령만 하달되면 출동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오전 11시경 갑자기 폭격기 2대가 이리지구 상공을 선회하는 것을 본 철도원들은 유엔군의 B29임에 틀림없음을 확인하고, 사무실 밖으로 뛰어나와 비행기를 향해 ‘B29다!’ ‘대한민국만세!’를 부르며 환호성을 올리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태극기를 들고 나와 흔들면서 기뻐할 때 비행기가 낮게 선회하면서 떨어뜨리는 물체를 보고 당시 가끔 비행기를 이용하여 뿌리던 삐라로 생각하고 ‘삐라다!’하며 달려가는 순간 요란한 폭음과 함께 생지옥이 되어버린 것이다. 

▲ 익산역 위령비와 승무사무소 순직비

미군폭격기는 적으로 오인하고 이리역 일대 작업 중이던 기관차는 물론 구내시설에 대해서도 맹폭격을 가했고, 철도원들은 폭격 중에도 적이 아님을 표시하기 위하여 태극기를 휘두르며 소리쳤지만 이리역 구내만이 아니고 인접한 민가 50여 채도 폭음과 함께 사라지면서 철도원 54명이 사망하고, 3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대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부상으로 입원 중에 사망한 철도원이 죽기 전 『쾅하는 폭음과 함께 건너편 기관차 위에 올라가 수리하고 있던 고내수가 공중으로 하늘높이 튕겨졌다 떨어지면서 산산조각이 나는걸 보고 쫓아가려니까 어쩐 일인지 몸이 움직이지 않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다리가 삐뚤어져 있어 놀란 것 보다는 다리 잘린 내가 동료를 구하려고 달려가려고 했던 사실이 신기 했지요』라며 말 했다는 이야기가 더더욱 동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고 한다.

▲ 현충일 철도박물관 긴재현기관사 묘소 헌화

1953년12월 교통부가 발행한 『한국교통동란기』 내용 중 ‘직장사수의 비화’편에는 대전역 구내원 오은균 외 3명과 기관조사 1명 등 5명이 군수물자 적재화차 7량을 후송하기 위하여 사력을 다 하다가 적군 포탄에 2명이 즉사한 이야기, 김재현기관사가 미군 딘소장 구출작전에 미군결사대 30명과 함께 진입했던 이야기와 7월20일 신호원 장시경씨가 객차 4량에 미군 20명과 함께 딘소장 구출과 군수물자 회수를 위하여 재 진입했다가 실패했던 이야기, 그리고 전쟁 중 순직한 155명의 철도원 명단이 실려 있다.
▲ 대전현충원 호국철도기념관

당시 딘소장 구출작전에 함께 참여했다가 미군 1명과 함께 살아남은 현재영, 황남호 부기관사는 7월19일 대전역에서 퇴각 중 적의 집중 사격으로 김재현기관사와 미군 29명이 사망한 사실을 증언하였고, 1962년 동료들과 함께 성금을 모아 경부선 선로변에 순직비를 건립했다. 

 

김재현기관사는 서울현충원 장교묘역에 안치되어 필자가 철도박물관 재직 시 현충일이면 직원들과 함께 조화를 들고 방문했었고, 철도공사 허준영사장이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쓴 편지로 인해 62년이 지난 2012년 뒤늦은 미국정부 특별공로훈장을 추서 되기도 하였다.

당시 사용된 증기기관차 미카3-129호는 복원되어 내용연한까지 운행된 후 2008년 등록문화재 제415호로 등록되었고, 2013년 철도공사 정창영사장 제안으로 객차 2량과 함께 대전현충원으로 옮겨, 객차에 전쟁에 참여한 철도관련 자료와 전쟁 중 순직한 철도원의 명부 등을 전시한 ‘호국철도기념관’으로 개관하여 현충원 방문 추모객 및 인근 유치원과 초·중·고 학생들이 자주 찾는 역사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철도경찰묘역과 사현터널

 

1970년대 필자가 장항선에서 역장으로 재직할 때 현충일에는 충남 보령시 남포면 옥서리 이어니재에 있는 철도경찰의 묘역을 찾곤 했었다. 

 

바로 아래쪽 장항선 철도 사현터널에서 6.25전쟁 중 적의 철도 침공을 막기 위해 끝까지 저항하다가 순직한 철도경찰들의 영령을 안치한 묘역으로 자그마한 비석 하나와 영령들을 합장한 묘소만 있던 곳에 어느 때부터인가 성역화 공사를 하고 있어 사연을 물어보니 철도경찰은 한국경찰의 원조라 할 수 있어 당연히 경찰에서 모셔야한다는 대답을 들었다. 

 

누구든 그 분들을 기억해주고 성역화 하는 모습이 무척 고마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철도경찰이 목숨을 잃어가며 지키려했던 사현터널은 장항선 직선화 개량공사로 폐지되었고, 승용차로 이곳을 지날 때는 잠시 들러 묘역을 돌아보던 습관이 있었지만, 지금은 직선도로로 개량되어 일부러 돌아가야만 접근할 수 있어 그냥 지나친 후에야 아차! 하며 아쉬워하기도 하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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